애굽 - <미츠라임 מִצְרַיִם>

 

 

우리말 개역성경에 ‘애굽’이라는 국가의 이름이 나온다. 새번역은 ‘이집트’, 공동번역은 ‘에집트’, 카톨릭역은 ‘이집트’라고 각기 다르게 번역했다. 영역본들은 일관되게 Egypt라고 번역했고 이것은 현대의 국가 명칭이 되었다. 성경에는 출애굽기라는 책의 제명에 이 명칭이 들어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켰다. 창세기에도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갔을 때 기근이 들었다. 그는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갔다. 애굽에는 <파르오 פַּרְעֹה>라는 칭호로 불리는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창12:15, 개역성경/새번역 ‘바로’; 공동역 ‘에집트 왕’; 카톨릭역 ‘파라오’).
그런데 정작 ‘애굽’, ‘이집트’ 또는 ‘에집트’라는 명칭은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이 명칭은 그리스어 성경(LXX)에 나오는 명칭으로서 <아이귀프토스 Αἴγυπτος>라고 표기되어 있다. 신약성경에도 이렇게 표기한다(마2:23; 행2:10; 히3:16). 이 표기는 히브리어 <미츠라임 מִצְרַיִם>을 번역한 것인데 <미츠라임>은 창세기 10장 6절에 처음으로 언급된 단어이다. <미츠라임>은 노아의 손자로서 둘째 아들 함의 둘째 아들이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창10:6. 개역). 이 구절에서 개역은 <미츠라임 מִצְרַיִם>을 ‘미스라임’이라고 번역했지만 새번역/공동역/카톨력은 ‘이집트/에집트/이집트’라고 옮겼다. 구스의 자손 중에 니므롯 같은 영웅들이 나와서 바벨과 니느웨 같은 도성들을 창건하고 고바빌로니아 제국과 고아시리아제국과 같은 어마무시한 제국들을 건설하였다(창10:8~10). 둘째 아들 미스라임의 자손은 이 중에 애굽제국을 건설하였다. <미츠라임>이 영어로 Egypt가 되고 프랑스어로 Egypte가 된 것은 그리스어 <아이귀프토스>에서 유래했음은 방금 말한 바와 같다. 그런데 이 그리스어는 본디 ‘나일강’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텔 엘 아마르나에서 출토된 비문에 상형문자로 <히쿠프타>라는 표기가 나왔는데 이것은 이집트어로 <하>-<카>-<프타>의 세 가지 요소로 분석된다. 번역하자면 ‘프타의 영혼의 집’이란 뜻이다. <프타>란 칭호는 창조신의 이름이었는데 멤피스라는 고대 이집트 도시의 수호신이었다. 그리스인들은 <프다>란 신의 이름을 따서 멤피스를 왕도로 정하고 그 도시국가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고대이집트인들은 자기네 땅을 <케메트>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검은 땅’이란 뜻이다. 아마도 나일강 하구의 삼각주 지대에 퇴적된 기름진 토양이 검은 빛깔을 띠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고대인들은 나일강의 유역을 벗어난 대부분의 땅을 가리켜서 <데쉬레트> 곧 ‘븕은 땅’이라고 불렀는데 애굽 땅은 대부분 건조한 사막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랍인들이 왔을 때 이 땅을 <미스르 Misr>라고 불렀다. 이것은 쿠란에서 따온 말인데 쿠란은 성경 창10:6에 나오는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 Mizraim이란 이름을 따서 그렇게 표기한 듯하다. 이집트어 <케메트>와 히브리어 <미츠라임>이 그리스어에서 <아이귀프토스>로 바뀌어서 현대의 <이집트>가 된 연유를 더 자세히 알아 보자.
<아이귀프토스>는 그리스어 <히-기-프토스>의 준말이다. 이것은 이집트 고대어 <헤트-카-프타> 란 말을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이다. <헤트>(히트, 하트>는 ‘장소’란 뜻의 명사이고 <카>는 ‘영혼이 육체로 나타난 것’을 가리킨다. 육체 자체는 <카트>인데 <카>는 육체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육체에 붙어서 나타나는 인격을 가리킨다. 이 말을 직역하자면 ‘프타의 <카>의 집’이 된다. <프타>는 이집트 창조신화에서 천지를 창조한 신들<네테르> 중의 한 분이었다. <네테르>란 단어는 신의 한 일면으로서 신의 속성을 가리킨다. 그리스인들은 이 <네테르>란 단어에서 ‘자연 nature’을 가리키는 단어를 뽑아 사용했다. 고대이집트인들에게는 자연과 신이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트-카-프타>란 말은 ‘프타란 창조신이 나타나는 장소’란 뜻으로 이해된다. 이 용어는 고대이집트 제국의 수도였던 멤피스의 유적지 근처에 위치한 현대의 마을 <미트 라하이나>에서 출토된 한 돌기둥의 비문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헤트-카-프타>란 명칭은 오직 한 장소를 가리키는 명칭으로서 고대왕조가 최초로 도읍으로 삼았던 왕도를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명칭은 제국의 영토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도 아니었고 이집트 문명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도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가리켜서 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케메트>, <케미트>, <켐>, <알 켐> 따위의 다양하게 발음하였다. 이 ‘검은 땅’<케미트>에서 농사가 잘 되었고 풍요의 경제가 문명으로 번성하였다. 이집트인들은 자기네들의 문명을 <케미트 Khemit>라고 부르며 자기네의 족속이나 언어를 가리켜서 <케미티안 Khemitian>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이들을 제대로 부르고자 한다면 ‘이집트’라고 할 것이 아니라 ‘케미트’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헤트-카-프타>라는 발음에 어려움을 느낀 그리스인들은 <아이귀프토스>라고 자기 식으로 바꾸어서 발음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이집트 파라오들의 이름도 바꾸어 불렀는데 아마도 <람세스>란 이름도 그 원래 본토 발음이 아닐 것이다. 나중에 아랍인들이 이집트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쿠란의 명칭을 따서 <미드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단순히 ‘나라’란 뜻이다. 현대에 이집트 교회를 가리켜서 ‘곱트’교회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도 아랍인들이 이집트인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이퀴프토스>를 발음하기 어려워서 ‘곱티’라고 바꾸어 불렀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이상으로 히브리어 성경의 <미츠라임 מִצְרַיִם>이 우리말 성경에서 “애굽/이집트/에집트’가 되었고 영어 성경에서 Egypt가 된 연유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