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네시스(γένεσις)에 대하여

 

 신약성경 전체에서 헬라어 게네시스(γένεσις)는 오직 다섯 번 쓰였다. 그 뜻은 기원(origin), 탄생(birth), 존재(existence), 근원(source), 역사(history), 계보(lineage), 생애(life)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고전 헬라어에서 쓰인 철학적 용어로서 게네시스는 시작(beginning) 혹은 기원(origin)을 뜻하는데, 이것은 소멸, 붕괴, 죽음을 뜻하는 프소라(φθορά)의 반대되는 말이다. 그리고 ‘존재하게 된 것’(becoming)의 의미로서 창조(creation), 생성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본질(being)이라는 뜻의 우시아(οὐσία)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 마태복음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라고 시작한다. 여기에서 ‘계보’라는 말은 헬라어 비블로서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이다. 계보라는 말을 헬라어에서 직역하면 ‘기원의 책’이라 할 수 있다. 게네세오스는 게네시스(γένεσις)의 소유격인데, 그 뜻은 여기에서 탄생이나 혹은 역사라고 번역하기보다는 ‘기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단순한 탄생을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구원사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번역하였지만, 원문에서는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의 책’이라고 되어 있다.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을 밝히는 목적이 있기에 다윗의 자손이 먼저 언급된 것이다.

비블로서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는 히브리어 세페르 톨르도트(ספֶר תּוֹלְדוֹת)를 번역한 헬라어인데, 헬라어 구약성경(LXX) 창세기에서, “천지의 내력”(2:4) “아담의 계보”(5:1)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천지의 기원(origin)에 대한 책, 아담의 계보(genealogy)를 적은 책이라는 말로서 이해할 수 있다.

학자들은 마태복음 1장 1절의 시작에 쓰인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에 관한 책’이라는 말이 1장에 나타난 예수 탄생의 계보를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원, 더 나아가서 복음의 기원이라는 말을 상상하게 함으로, 이 단어가 마태복음뿐만 아니라, 배열된 신약성경 전체의 제목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태복음의 1장 족보는 조상으로부터 후손으로 내려가는 히브리적 계보라 한다면,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후손에서 조상으로 기원을 찾아 올라가는 헬라적 계보라 할 수 있다. 마태는 히브리적 계보를 사용하는 가운데 특별히 헬라어 겐나오(γεννάω, 낳다)를 39번 사용하며, 예수의 출생을 정점으로 하는 탄생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1장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예수 크리스투 헤 게네시스 후토스 엔,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ἡ γένεσις οὕτως ἦν)”고 말한 후에, 25절까지 예수가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음을 분명히 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것은 16절 계보에 잠깐 언급된 동정녀 탄생을 더욱 부연 설명하려는 이유 때문이다(16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계보의 전통적 틀을 깬 이방 여인들(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로부터 태어난 후손임을 보여주는 ‘불규칙한 탄생’처럼, 동정녀 탄생도 성령의 역사인 신적 역사의 개입으로 말미암은 불규칙한 탄생임을 알리기에, 18절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적 탄생은 이렇다(후토스, οὕτως)”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기원이 이러하다” 고 마태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것은 18절에서 “낳다”(γεννάω)의 명사형 겐네시스(γέννησις, begetting, birth)를 사용하지 않고, 다시 한 번 1절에서 사용된 게네시스(γένεσις, origin)를 사용하였다. 성령에 의한 잉태 사실을 거듭 강조함으로(18, 20, 23, 25절),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기에 이 단어를 다시 사용한 것이다.

게네시스가 ‘탄생’(birth)이라는 뜻으로 분명히 쓰인 곳은 세례요한의 탄생에 대하여 천사가 그의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에게 알려줄 때이다: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γένεσις)을 기뻐하리니”(눅 1:14). 게네시스는 특별히 야고보서에서 두 번 나오는 데,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거울로 보는 사람과 같아서”(1:23) 라는 구절에서, “그의 본래의 얼굴”(토 프로소폰 테스 게네세오스 아우투, τὸ πρόσωπον τῆς γενέσεως αὐτοῦ)라는 구문에서 ‘선천적인, 본래적인, 자연적인’ 자기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게네시스(γένεσις)이다.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γένεσις)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3:6)라는 구절에서, “삶의 수레바퀴”(호 트로코스 테스 게네세오스 ὁ τροχός τῆς γενέσεως)라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플라톤적인 인간영혼의 윤회설, 고대 오르페우스적 밀의종교(Orphic mystery religion -죽음과 내세에서 구원해 내는 오르페우스를 신봉), 혹은 유대교가 가진 세계관을 보여주는 단어인데, 여기에서 게네시스(γένεσις)는 인생에 일어나는 행운과 불운,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인생의 실존을 의미하고 있다.

게네시스라는 단어는 성경의 창세기를 의미하고, 또한 예수와 복음의 기원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의 실존과 인생의 전 과정을 말하는 단어이다. 신앙은 기원을 찾아가는 노력이다. 세상과 생명의 기원과 본질을 찾는 영혼의 순례, 이것이 어쩌면 신앙의 모든 것이다.